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버트 공 (문단 편집) === 결혼 === 1836년 형 에른스트 공세자(훗날의 [[에른스트 2세]])와 함께 고모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켄트 공작부인]]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영국을 방문해 고종사촌이자 당시 켄트의 공녀였던 [[빅토리아 여왕|빅토리아]]와 사실상 첫 맞선을 보았다. 처음 빅토리아가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은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의 에른스트였지만 [[얼빠|미남미녀를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것으로]][* 빈말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의 얼빠 기질은 당대에도 유명했는데, 손주들의 외모 품평도 서슴치 않았으며 특히 예쁘고 잘생긴 손주들을 노골적으로 편애했다.] 유명했던 빅토리아는 얼마 못 가, 자신의 일기장에 "푸른 눈에 아름다운 코, 하얀 치아" 등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을 정도로 대단한 [[미남]]이었던 앨버트 공에게 반해버렸다.[* 너무 잘생겨서 아버지인 [[에른스트 1세]]의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인 루이제가 앞서 말한 유대인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헛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앨버트의 집안에는 나름 미남미녀들이 꽤 있고, 부친 에른스트 1세도 나름 준수한 미남이다.] 게다가 함께 지내면서 앨버트 공이 겸손하고 뛰어난 인품까지 갖춘 인물임을 알게 되자, 여왕은 즉위 3년 뒤 직접 청혼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때의 청혼에 대해 일기에 자세히 적어놓았다. "앨버트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접견실로 들어왔다. 그에게 접견실로 부른 이유를 알 거라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에 그도 동의한다면 무척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우리는 서로 포옹했다. 그는 무척 다정하고 친절했다. …(중략)… 나는 내가 그에게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고 나와 결혼하면 많은 희생이 따를 거라고 말했다. 앨버트는 결코 희생이 아니며 나와 함께 일생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는 것 이상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이었던 빅토리아는, 앨버트가 청혼을 받아주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천사 같은 앨버트에게 사랑받는 느낌은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고 일기에 적었을 정도였지만, 막상 앨버트는 '''"빅토리아는 나에게 너무 잘해주고 친절해요.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생각하면 난감할 때가 있어요."'''라고 형에게 편지를 썼다고. 심지어 여왕의 시녀조차 결혼 첫날밤을 보낸 직후의 부부에 대해, 여왕은 앨버트에게 깊이 빠져 있지만 앨버트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증언해 잠시나마 입장이 곤란해지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 Marriage of Queen Victoria, 10 February 1840.jpg|width=100%]]}}} || || '''결혼식''' || 부부생활은 주로 앨버트 쪽이 인내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처가살이하는 [[데릴사위]]라는 입장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앨버트의 성격이 진중하고 이성적이었던 반면에, [[빅토리아 여왕]]은 고집불통에 매우 불 같은 막가파적인 성격이었기 때문. [[부부 싸움]]은 주로 사소한 사건에도 자주 성을 내곤 했던 빅토리아의 신경질로 시작되었다. 이때 앨버트가 전형적인 독일인답게 [[팩트폭력|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논리로]] 빅토리아의 잘못을 열거하며 가르치려 들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꾹 닫고서 그러려니 하는 무심한 태도를 보이면 여왕은 점점 [[스팀]]이 오르다가, 결국엔 참다 못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앨버트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짜증을 쏟아부었다가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나중에는 도저히 참지 못한 앨버트가 그만하라고 꽥 고함을 지르거나 뛰쳐나가 버리는 패턴의 반복이었다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부부싸움은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게다가 주치의들조차 여왕이 할아버지 [[조지 3세]]나 [[앤 여왕]] 처럼 [[하노버 왕조]]의 광기를 물려받아 피에 굶주린 간악하고 잔악한 [[정신이상자]]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로, 빅토리아 여왕이 한 번 화가 났을 때 부리는 성질은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앨버트쯤 되는 보살급 멘탈이니 그 포악한 성격 감당하고 산다는 게 당대에도 이미 중론. 그러나 이런 더럽고 변덕스러운 성미와는 별개로 일단 흥분이 가라앉으면 상대의 말이 맞고 자기가 너무 지나치게 화를 냈다는 걸 인정하며, 먼저 다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고 화해를 청하는 쪽도 주로 빅토리아였다고 한다. 하루는 대판 싸운 앨버트가 단단히 삐져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가버리자 빅토리아가 문을 열 것을 명령하며 첫 번째로 "영국의 여왕이에요.", 두 번째로 "빅토리아입니다."라고 했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빅토리아가 다시 노크하며 "당신의 아내예요."라고 말하자 앨버트가 기쁘게 문을 열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에피소드. 빅토리아 여왕은 근세 여성 군주의 한계상, 군주임에도 여느 여염집 아낙처럼 부군에게 순종하고 권력을 공유해야 하는 게 싫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처럼 독신으로 살고 싶다고 처녀 시절 누차 언급했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와의 결혼을 결심한 데에는 앨버트의 매력에 굴복한 탓도 있었지만, 당시 수상이었던 멜번과 지나치게 친밀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아버지 없이 자란 여왕이 아버지처럼 자상한 수상과 손발이 잘 맞아 의지했던 것이었지만.. 그 바람에 의회에서 '멜번 부인'이라는 조롱을 당할 정도로 여왕으로서의 체통에 큰 타격을 입고 있었던 점도 컸다. 적당한 왕족과 결혼해서 성실한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스캔들을 잠재울 만한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앨버트와의 결혼 기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을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완전히 앨버트 공에게 의존하는 얌전하고 온순한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비록 여왕 본인이 내색은 안 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결함있는 성격을 알고 이를 묵묵히 받아주며 보완해 주는 앨버트에게 큰 감사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심지어 딸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에게 보내는 편지에 '''"앨버트가 하지 말라고 하면 리본 하나라도 절대 함부로 매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썼을 정도. 다만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에게 심적으로 의존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매우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이었고 자신의 의지대로 통치했다.[* 사실 영국 귀족 사회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은 앨버트가 정치에 뭐라 할 처지도 아니라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